언제나 "고 김형률님의 어머니"로 불리며 이름이 불리기도, 연단에 오르시지도 않았았습니다. 언제나 할아버지 옆에 계시며 잔잔히 웃음을 짓고 계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곡지 할머니는 핵무기 피해자이시며, 핵무기 피해자의 진실과 책임자들이 올바로 그 책임을 질 수있도록 오랜 기간 싸움을 이어 온 우리의 어르신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아드님을 뵈며 - 할머니 사진을 보내드리겠다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할머니의 단독사진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고맙다며 인사하시던 다정한 할머니셨는데, 기억과 달리 사진첩엔 할머니 단독 사진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사진은 할아버지와 함게 한 사진, 단체 사진, 그리고 옆 모습뿐이었습니다. .
그리고 그 표정은 내 기억과 달리 - 단 하나의 사진에서도 웃으시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웃을 수도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앞서간 아들의 사진 앞에서 어떻게 웃을 수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을 들어다 보며 - 너무 미안하고 죄송했습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실, 할머니와 눈 마주치고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찾아가 뵈야지 했는데 기어이 가지 않고 오늘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하고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의 얼굴은 밝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편하게 가셨다고 합니다. 웃는 얼굴로 잠자듯 가셨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있어서 우리가 있을 수 있었어요"라고 인사를 전했습니다.
할머니- 이제 편히 쉬셔요- 모자르고 많이 모자르지만 우리가 이어갈게요.
* 할머니의 웃으시는 사진을 마지막에야 발견했습니다. 형률님의 열번째 기일을 추모하는 주모식에서, 이날 민주공원에 형률씨를 기리는 나무를 심고 그 앞에 작은 비석을 세웠습니다. 할머니는 그 앞에서 환화게 웃으시며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 사진 : 부산반핵영화제 조직위원회, 장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