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2호기 영구정지 선포문>
“고리2호기 영구정지로 안전한 세상,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갑시다.”
2017년 6월 19일 0시, 대한민국은, 국내 최초의 핵발전소 고리1호기를 영구 정지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고리1호기, 월성1호기에 이어 국내 세 번째 핵발전소인 고리2호기가 수명을 다해 정지하게 됩니다. 1983년 4월 9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후 40년 만입니다. 하지만 고리1호기 영구정지와 더불어 탈핵사회로 나아갈 것 같았던 한국은 윤석열정부의 핵발전 진흥정책에 따라 고리2호기를 비롯한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의 위협에 놓여있습니다.
시민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와 한수원
한수원은 고리2호기 수명연장을 위해 내용이 부실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작성하고 요식행위에 불과한 공람, 공청회를 강행했습니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를 하면서 절대 고리2호기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같은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서 시나리오 상정에 우회사고 등을 배제했고, 주민보호대책을 초안에 작성하지도 않은 채 공람과 공청회를 진행했습니다. 고준위 핵폐기물 시설에 대한 평가와 처분 방법을 누락, 다수호기 사고의 영향평가를 하지 않은 점 등 한수원의 부실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의 문제는 하나하나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산업부는 정책브리핑을 통해 전 정부의 탈원전 기조 때문에 한수원이 법령상 ‘계속운전’ 신청기한(5~2년 전)을 지키기 못했고 이 때문에 ‘계속운전’ 승인을 받기 전 최초 운영허가가 만료돼, 가동중단이 불가피해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작년 말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을 개정해 ‘계속운전’ 신청 기간을 변경해(10년~5년) 핵발전소의 지체 없는 재가동을 위해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는 것입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산업부의 핵 진흥 정책 기조 아래 핵발전소의 안전과 규제의 내용을 담아야 할 원자력안전법을 사업자를 위해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해야 할 정부가 그 책임은 망각한 채 오로지 핵 진흥에 앞장서고 있는 꼴입니다. 이렇게 개정된 원자력안전법 때문에 윤석열 정부 임기 내 노후핵발전소 10기가 18번 수명연장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최대 핵발전소 밀집지역! 지역희생만 강요당한 핵도시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핵발전소가 가장 밀집한 나라입니다. 국토 면적당 핵발전소 설비용량은 물론이고 단지별 밀집도, 반경 30Km 이내 인구수도 모두 세계 1위입니다. 특히 고리핵발전소는 반경 30km 안에 부산, 울산, 경남의 382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당시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30km 안 인구는 17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무려 22배가 넘는 인구가 밀집해 있는 것입니다.
40여 년 전, 국가 주도 발전사업으로 전기 만드는 공장을 이곳에 짓겠다고 했을 때 지역주민들은 그것이 지역을 위한 일이고, 나라를 위한 일이라 생각해 강제 이주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기 만드는 공장이 어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지, 어떤 위험한 방사성 폐기물을 만들어 낼지,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세하게, 책임 있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핵발전소에서 고장이 나거나, 위험 사고가 은폐되는 사건이 밝혀지고 사상 초유의 비리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도 지역주민들의 알권리나 안전보다 조용히 무마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이 사업자와 정부의 태도였습니다.
하나둘씩 들어선 핵발전소가 이제 10기입니다. 고리1호기가 폐로 절차에 들어갔지만 안전한 폐로를 위해 여전히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핵발전소가 매일 만들어내는 위험한 핵폐기물은 쌓여가고 있고 안전한 처분 방법을 찾지도 못했는데 ‘임시’라는 눈속임으로 핵발전소 지역마다 고준위핵폐기물을 보관하겠다고 합니다. 핵발전소도 모자라 핵폐기장까지 떠안게 될 위험에 놓인 것입니다. 이곳 고리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대도시의 낮과 밤을 밝힐 때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지역, 다이내믹 핵도시에서 살아가는 부·울·경 주민들은 안전과 삶은 오히려 희생만 강요당했습니다.
핵발전소의 안전 위협하는 기후위기
핵발전소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더 많아졌습니다. 정부와 사업자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다양한 안전 조치들을 취했으며 한국 핵발전소의 안전이 세계 최고라고 주장했지만, 그 모든 것이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올해 1월에 발표한 행정안전부의 한반도 단층 연구 용역 결과, 고리·월성 핵발전소 인근에 언제든지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이 16곳 있다고 전문기관들의 중복 검증을 거쳐 밝혀졌습니다. 이 16곳의 활성단층 가운데 핵발전소 설계 시 고려해야 하는 설계고려단층도 5개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고리와 월성핵발전소는 건설 당시 전혀 이들 단층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 2017년 발생한 경주, 포항지진 보다 더 강도가 높은 지진이 발생할 수 있으며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은 이미 전문가들이 수차례 주장해온 사실입니다. 지진대 위에 건설한 핵발전소와 이로 인한 위험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2021년 태풍 ‘힌남노’로 핵발전소의 전원이 상실되고 자동 정지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작년 울진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송전선로가 끊어진 사건은 대규모 정전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핵발전소는 인적 실수, 기계 결함, 안전 불감증, 자연재해 등 어떤 이유로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그로 인한 피해가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 될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핵발전 옹호자들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핵발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가속화된 기후위기의 시대에서 기후 재난 현상들은 핵발전소의 안전을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희생당하는 지역주민, 정상적으로 평가하면 고리2호기 수명연장 불가
한수원은 고리2호기 수명연장 관련 방사선환경영향평가를 하면서, 중대사고로 인한 개인피폭선량이 연간 120mSv(밀리시버트)라고 밝히고, 이는 기준치 250mSv를 충분히 만족하는 평가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반인의 평상시 방사선 피폭선량 기준치는 연간 1mSv입니다. 그런데 중대사고시에는 기준치가 250mSv라고 하는 것은 사고 시 주민 피폭을 기정사실화하는 규정입니다. 핵발전은 이처럼 핵발전소 지역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발전원입니다.
또한 한수원은 고리2호기가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를 절대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도 안 되는 호언장담을 했는데, 중대사고 시나리오 상정을 제대로 하면 기준치 250mSv를 훌쩍 넘어서서 수명연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그렇기에 한수원은 고리2호기 수명연장만을 위해서 제대로 된 중대사고 시나리오 상정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정부와 한수원의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이내믹 핵도시가 아닌 정의로운 전환의 도시로 나아 갑시다
핵발전소가 멈추면 현장의 노동자들의 생계와 지역경제가 위협받을 것이라 우려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핵발전으로 인한 지원에 종속되어 왔고 수많은 노동자가 이 발전소 현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우려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오히려 분명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피폭의 위험에서 일하지 않도록, 핵발전이 아닌 다른 산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세계적 흐름에 맞추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핵발전이 아닌 재생에너지를 더욱 확대해야 합니다.
핵발전 노동은 기본적으로 피폭을 전제로 하는 노동입니다. 그것이 기준치 이하냐, 이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자체가 중요합니다. 방사능 피폭의 위험은 지역주민들 역시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핵발전소 인근에서 거주한 지역주민들에게서 갑상선암 등의 건강이상이 나타난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인과관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과관계에 대한 관련 연구조사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갑상선암공동소송은 7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은 양의 방사선이라도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피폭은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지역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종속되어 온 관계도 이제 끊어야 합니다. 핵발전소 때문에 혜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위험에 부과된 생명안전 수당과 같은 것입니다. 핵발전소가 지역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도 따져 봐야 하겠지만 각종 지원사업은 오히려 원래 정부와 지자체가 국가 예산, 지방예산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한수원이 대신 하게 만든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핵발전이 아닌 정의로운 전환의 도시로 지역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야 할 때입니다.
고리2호기 영구정지로 안전한 세상,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갑시다
후쿠시마 핵참사 이후, 전 세계의 국가들이 에너지정책의 대전환을 준비하고 또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값싸다고 생각해왔던 핵발전이 사회적합의비용과 사고 시 수습비용, 핵폐기물처분비용 등을 고려하면 절대 저렴한 에너지원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실제로 핵발전 단가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재생에너지원들의 단가는 계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기후위기 때문에 여러 국가가 핵발전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핵산업계와 핵공학자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핵발전소 비중이 많은 나라들도 이미 재생에너지 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신규핵발전소를 가장 많이 짓고 있는 중국 역시 재생에너지산업에 투자하는 비용이 훨씬 많습니다. 핵발전소 개수로 단순 비교할 것이 아니라 에너지정책과 산업 분야 전반으로 비교해 보면 핵발전은 사양산업이 분명합니다.
핵발전소를 보유한 국가들 모두가 핵폐기물의 처분 문제 때문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핵폐기물이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전가되는 위험이기 때문입니다. 석탄발전소보다 탄소를 덜 배출 할 뿐이지 핵발전 역시 우라늄을 채굴부터 운영, 폐로, 폐기물 처리의 전 과정에서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미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에너지원을 선택하는 것, 더 이상의 핵폐기물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것,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를 가속화하지 않는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방향입니다.
고리2호기 영구정지로 안전한 세상,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갑시다.
2023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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