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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정행과 함께/에정행이야기

[에·친·소] 마을에서 꿈을 찾는 정중효님을 만나 뵈었어요^^

by 부산에너지정의행동 2023. 4. 17.

 

3월은 양산 덕계에 살고 있는 정중효 회원님을 만나뵈었습니다. 

행동 현욱이 중효님을 보면 늘 부러워 하죠. 그에게는 우리가 늘 바라는 꿈을 실현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보여요. 그는  느리고 작은 듯하지만  마을이 세상을 구하 듯 교육과 마을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벌써 12년을 맞이한 부산온배움터가 지역에서 자리매김 할수 있었던것은 그와 그의 동료들의 노력이 많이 깃들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죠.  분명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까지 해내고 있어요. 그를 부러워하며^^ 에친소를 계기로 그가 꿈꾸며  부산온배움터를 일구며 또 마을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어려웠던 점과 보람들을 얘기나고자 덕계마을을 찾았답니다.

 

 

 

저녁 7시가 넘어 중효님을 만난 곳은 '이음'이라는 작은 카페였습니다.

이곳은 생명평화 덕계마을공동체의 조합원들이 직접 만든 우리밀  빵과 차를 판매하거나 마을주민들이 모여 소담을 나누기도 한다고 해요. 카페 '이음' 길목 담벼락에는 마을 모습을 담긴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요.

중효님은 이 마을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다며 생명평화 마을공동체가 운영하는 공간들을 그림으로 벽화로 그린것이라고 설명해주셨어요. 담벼락 그림만으로도 이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공동체의 활동들을 느낄수 있었답니다. 그림속에는 마을방송국 FM이음, 마을서점 당신의글자들, 꽃피는학교, 마을수공예공방 손수, 마을채식쌀빵카페 이음,  마을중학교 밝은덕중학교, 마을두부가게 아빠두부, 마을목공방 이음...

 

저녁 7시에 만나 10시가 넘도록 3시간 이상 얘기를 나누었지만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고 중구난방에다 못다한 얘기들이 너무 많아  중효님께서 질문지에 이렇게 답글을 보내주셨어요.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양산 덕계에 살고 있고 현재 부산 정관에 있는 공립학교 행정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생태환경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던 중, 첫째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무렵인 2011년도에 양산 덕계에 있는 대안학교 꽃피는학교에 아이를 보내게 되면서 이 마을에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대학인 녹색대학(현 온배움터)의 부산지역 활동도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온배움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곳에서 어떤 활동들을 이어 오고 있나요?

저는 현재 점점 심각해지는 생태환경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시민활동이 크게 2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첫째는 이 위기를 일으키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고 둘째는 대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가 온전히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점점 커져가야 생태전환사회, 생명평화세상이 우리에게 하루빨리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시민들도 이 둘중 어느하나만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 아니라 두가지 모두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지요.

 

하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이런 의식이 온전히 생성되기 전에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꾸리다 보니 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 경제성장이데올로기와 중앙집권적 국가주의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만, 직업을 가지게 되기 시작하자마자 다양한 생태환경운동단체에 자발적으로 후원회원이 되어 재정지원을 하며 간접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정의행동도 전신인 청년환경센터 때부터 꾸준히 관심가지며 지켜봐 오다가 부산녹색연합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김현욱활동가님의 추천으로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좀더 관심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야는 시민의 힘으로 대안적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저는 현재 크게 두가지 활동영역에서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생태적 삶의 양식을 교육하는 기관인 부산온배움터와 대안학교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며 조금씩 마을공동체를 형성해 가고 있는 생명평화 덕계마을공동체입니다. 

 

부산온배움터는 제가 20대 후반 대학 때 생태철학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그 교수님께서 녹색대학을 소개해 주시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녹색대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대학으로 경남 함양에서 2003년에 개교하였습니다. 그당시 전국의 수많은 생태환경운동 진영의 엄청난 열망을 담고 있었고 생태일꾼을 제대로 양성하여 자본주의를 이겨내고 생태사회 전환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20대 후반의 청년이자 녹색대학을 동경하는 후원자로서 녹색대학의 활동을 열심히 응원하며 매일매일 그 활동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녹색대학은 기대와는 달리 개교하고 1년이 되기 전에 큰 갈등을 겪게 되었고 그것이 잘 해결되지 않는 상황속에서 점점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워낙 생명평화세상에 대한 큰 뜻을 품고 시작한 일이라 많은 분들이 남아 녹색대학의 뜻을 이어가려던 중 2008년 쯤에 당시 녹색대학 대표님이셨던 고 허병섭 목사님께서 학교의 이름을 온배움터로 바꾸고 지역마다 녹색대학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운동의 방향을 전환하셨습니다. 부산에도 오셔서 방향전환에 대한 말씀을 주시면서 부산에서도 온배움터를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하시게 됩니다. 저는 그 때 녹색대학의 후원자들의 부산지역 공부모임이자 녹색평론 부산독자모임을 겸하고 있던 부산생태공부모임 구들장을 이끌고 있던 터라 직접적으로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제안을 하시고 허병섭 목사님은 얼마되지 않아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상에 오래 계시다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만, 저에게는 허목사님의 진심어린 제안이 하나의 유지가 되어 계속 머릿속을 맴돌다 2011년 아이를 대안학교 보내게 됨과 동시에 부산초록온배움터준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준비모임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온배움터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온배움터 활동이 벌써 10년이 넘었고 저도 40후반의 중년이 되었으니 참 세월 빠르고 한편으로는 허무한 느낌도 드네요.

 

부산온배움터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실력있는 생태시민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시민대학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1학기 또는 1년 기본과정을 거친 후 심화, 연구과정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시민대학에는 산야초, 전통발효, 공동체텃밭, 벼농사 등 먹거리자립학교와 생태철학, 생태건축, 손바느질학교 등 의식주 자립에 필수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고요, 마을과 학교로 찾아가는 온배움터 활동, 교사 직무연수 등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시민대학과 더불어 청년대안센터 활동이 있습니다. 시민일꾼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안적 삶을 삶고자 하는 청년들을 만나고 키우는 일도 무척 중요합니다. 올해까지 7년째 지역청년을 활동가로 키우는 청년대안활동가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공동체적 삶을 경험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청년공유주택 살리학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살리학숙에는 일반 직장인, 시민사회활동가, 진로모색단계에 있는 청년 5명이 모여 공동체생활을 시작했는데 대부분 생태환경의식이 높아 비건을 지향하고 있거나 현재 비건인 청년들이라 비건하우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생태의식을 공동체생활을 통해 실천하려는 의지가 매우 높습니다. 기후위기가 점점 심화되면서 생태환경문제의식 및 생명감수성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실천해 보려는 청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공동체생활을 통해 직접적으로 생태적 삶을 실천하며 자신을 단련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을 체득하는 경험은 현대의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라 우리도 무척 기대하며 살리학숙의 삶을 응원하며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부산온배움터는 2021 10월에 행정안전부의 지역자산화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은행 대출을 통해 금정구 남산동에 작은 상가건물을 구입하게 되었고 이곳을 생태문화공간 살리라고 이름지었습니다. 크게는 이 문명을, 작게는 사람들의 삶을 살리는 공간이 되자는 뜻입니다. 현재 지하 공유부엌, 1층 식당 임대, 2층 교육장, 3층 공유사무실, 4층 살리학숙, 5층 옥상문화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살리는 온배움터만의 공간이 아니라 이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바람을 담고자 기후환경운동을 하는 2개 단체(기후변화에너지대안센터, 부산기후환경네트워크)와 공유자산협의회를 구성하여 공동운영하고 있고, 온전한 시민자산화를 이루기 위해 300만원을 출자(기부 또는 차입 중 선택 가능)하는 300명의 시민건물주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살리 공간은 상시적으로 공간을 대여할 수 있고 공유사무실은 1~2개 단체가입주할 수 있는 공간도 있기 때문 혹여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 중에 사무공간, 교육공간이 필요한 분이 계시거나 시민건물주 참여를 통해 시민자산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주셔도 됩니다.

 

인터뷰했던 카페이음은 어떤 곳인가요? 그리고 카페이음 담벼락 앞에 마을지도가 있네요. 이 마을도 소개해 주세요^^

부산온배움터 운동과 더불어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활동은 마을공동체 활동입니다. 마을공동체는 활동이라기 보다는 삶 그자체이지요. 이곳에서 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고, 밥을 같이 먹고 있고 텃밭도, 운동도, 공부와 수양도 동지들과 더불어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11년 꽃피는학교에 아이를 보내면서 대안교육으로 시작한 일이 대안적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그 지평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졌습니다. 아이를 꽃피는학교에 보내면서 5년 쯤 지날 무렵에 대안학교의 구성원들이 학교안에만 머물러있으면 안되다는 문제의식이 여러 사람들에게 생겨나기 시작했고,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곳 카페이음을 시작하고 난 뒤 다양한 마을공동체 거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5년전에 처음 만들어진 이곳 카페이음은 우리 마을조합 구성원들의 사랑방이자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매개공간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협동조합을 만들어 카페를 운영하고 여러 주민교육을 시도하긴 했지만 마을공동체란 무얼까 하는 궁금증과 목마름은 커져만 갔습니다. 

 

대안적 마을공동체에 대한 공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을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겪을 수 밖에 없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학교와 마을조합이 모두 어려움을 겪던 시기라 우리에게 부족한게 뭔지 알아보고 제대로 채우기 위해 우리마을읨 많은 구성원들이 1년 넘게 공동체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그 교육으로 의식이 고양되면서 그때부터 마을중학교, 마을공방, 마을방송국 등 다양한 마을공간들이 많이 생겨났고 동지들끼리 저녁을 함께 먹는 마을밥상, 정기적으로 좋은 배움을 이어가는 마을서원 활동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현재 우리마을에서 저의 1주일의 삶을 소개하면요, 아침에 일어나고 나면 공립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와 마을중학교에 다니는 둘째아이는 알아서 준비해서 등교를 하고요 마을초등학교에 다니는 초3짜리 막내딸을 카풀로 같이 등교하는 아랫집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합니다. 퇴근하고 나면 매주 월~목까지 마을밥상에서 저녁밥을 함께 먹고 저녁식사 전이나 주말에 짬짬이 마을텃밭에서 밭을 일구고,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마을축구동아리에서 초등고학년부터 중고등학생, 마을학교교사, 학부모 등 20여명이 모여 축구를 함께 합니다. 인터뷰하고 있는 이곳 마을카페가 작년 가을부터 채식쌀빵집으로 바뀐 뒤로 매달 정기적으로 빵을 신청해서 먹는 달빵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주 2회 빵을 신청해서 먹고 있고요 마을두부가게에 제공하는 주1회 두부를 받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마을주민들 중 남자어른 6명이 하나의 두레를 구성해서 매주 모여 함께 공부하고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두레모임이 3~4개가 더 있습니다. 이외 대안학교 학부모로서 학교일에 참여하거나 부모들과 모임을 갖거나 하는 등의 소소한 일들도 많지만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12년간 부산온배움터활동을 이어 오면서 보람과 또 어떤 꿈을 꾸고 계실까요?

가장 큰 보람은 특정한 사건보다는 부산온배움터 활동을 통해 제가 대안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보람같습니다. 저는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지도 않아서 아주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다만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근본적인 배움을 알아가려고 노력하긴 했어요. 그러다가 녹색대학을 알게 되고 직장을 다녔어도 생태공부를 모임을 통해 계속하게 되었지요. 대학 때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했어도 그 삶을 이어가지 못하고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잖아요. 제가 큰 활동을 남긴건 없지만, 좀비와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 부산온배움터 활동을 통해 세상에 똥침을 날리고 있다, 작은 스크래치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낍니다.

 

앞에 언급했던 살리학숙이 시작된 건 오로지 온배움터의 오래된 동지인 채상병님이 온갖 고생과 노력을 해서 얻어낸 결과와 마찬가지인데요. 청년활동가과정을 통해 첫삽을 뜬 청년교육이 살리학숙이라는 청년공동체로 확대재생산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살리학숙의 시작은 온배움터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기존의 시민대학은 교육에 매몰되어 있는 성격이 컸어요. 우리가 시민대학을 표방하고 생태전문가를 키우려는 의도는 가지고 있지만, 실제 참여하는 시민은 교육 그 자체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삶의 영역으로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동안 시민대학의 경험 축적이 청년센터 활동을 견인했다면 살리학숙은 온배움터에 오는 시민들의 의식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시대의 기후환경 생태위기는 청년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잖아요? 성인이라고, 어린이라고 예외가 없어요. 어떻게 서로서로 손잡고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 우리 삶 전반을 돌아보고 공동체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답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청년들의 공동체는 시민들의 공동체로 이어질 것이라 보고 있고 꼭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앞으로 온배움터의 활동방향은 [배움에서 삶으로]라고 새롭게 정리해 보았어요. 그동안 부산온배움터가 교육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삶 자체를 전환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생태문화공간 살리가 있는 남산동주변으로 생태전환과 생명평화세상을 꿈꾸는 콘크리트 출신 도시인들이 모여 삶을 전환하고자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기후환경위기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대처하는 것이 앞으로 부산온배움터의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산시민사회와 부산에너지정의행동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바라는점보다는 너무너무 고생많다는 말을 먼저 해 주고 싶어요. 부산의 시민사회운동의 다양성 부족, 시민참여 부족 등에 대한 비판이 많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이곳 부산에서 이정도의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대단하고 정말 고생많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특히 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님들은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갈아버릴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그 덕에 제대로된 탈핵운동을 하게 되어 정부의 무리한 찬핵추진도 시민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일당백도 이런 일당백이 없다고 생각해요. 간혹 우리 현욱활동가님은 활동가로서는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시기는 하나 조금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현욱활동가님만한 활동가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탈핵과 에너지정의에 관심있는 청년들을 잘 발굴하여 현욱활동가님이 잠시라도 좀 쉬시거나 그동안의 활동에 걸맞는 위치에서 제대로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기후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이 시기에 에너지정의행동이 탈핵과 에너지전환의 시민사회의 최후의 보루로 지금처럼 굳건히 남아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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